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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밀스타인:기억의 캐비닛 Ilya Milstein

메이메이 2023. 9. 26. 00:20

피카소 이후 오랜만에 다시 찾은 마이아트 뮤지엄.

 

그 사이에 삼성역에서 뮤지엄 가는 길이 공사장으로 변했다. 2023년의 공사판이라고 해서 먼지 가득한 진창길은 아니지만 길이 좁아져서 오가기 불편해진건 사실이다.

 

아무튼 도착하고 보니 전에는 몰랐는데 뮤지엄 앞쪽이 흡연자들의 천국이었다. 그동안은 아침에 오픈런 해서 몰랐던 거다. 오늘은 아이 학교 끝나고 가서 1시 40분에 도착했더니.... 점심을 먹고 나온 흡연자들이 일렬로 주욱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이건 뭐 거의 밀폐된 공간 안에서 담배 연기를 맡는 기분.

 

어서어서 뮤지엄으로 도망가자~ 는 마음으로 급히 내려갔다. 

일단 좀 출출하니 바로 옆 김밥 맛집 방배김밥에서 김밥 두줄 먹고

 

 

포토존 구경~

 

 

 

라임색이 굉장히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포토존이었다.

 

 

셀카봉, DSLR, 디지털 카메라, 아이폰 라비으 포토, 영상~ 이런건 금지다.

 

몰랐다.

 

사진촬영이 가능하다고만 생각했지. 어떤 카메라로 찍는것까지 허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새롭게 숙지해본다. 

전시된 작품은 거의 모두 지클리 프린트다. 

 

얼마 전에 맥스 달튼 전시에 갔다가 지클리 프린트가 뭔가~ 검색해봤는데. ㅎㅎ 이제 검색 안해도 안다! 

 

그리고 오늘 전시에서 또 눈에 띈 것 "커미션" 

 

의뢰를 받아서 작업을 하면서 예술가로서의 내적 갈등이 있었다는데 

 

아무래도 주문자의 니즈라는게 있었을테니 말이다. 

 

엘지의 연작 시리즈도 전시되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엘지는 일리야 밀스테인에게 아주 고마운 회사였다고 한다. 엘지는 그냥 마음데로 그리라고 했단다.

 

그래서 작가는 엘지 전자제품 관련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난 면도기 업체에서 의뢰한 너무 면도기 면도기 한 그림보다

 

엘지의 공기청정기 그림, 냉장고, 세탁이와 건조기, 청소기가 있는 그림까지. 그냥 그 자체로 예술품이었다. 

 

 

 

8살인 아이가 이 그림을 한참을 보고 서있길래 좋아서 그런가 하고 물었더니

 

"다 흘렸어. 겨우 저거 하나 그렸는데." 

 

 

"엄마, 누가 이기고 있는거 같아? 흰색이 이기고 있는거 같지? 흰색은 여왕도 먹은거 같애. 다섯개나 먹었어."

 

일리야 밀스타인의 그림은 가득 채워져 있다. 가득 채우기 위해서 모든걸 섬세하게 담았고 결국 그 안에는 사람과 이야기가 담겼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사람은 그림에 빠져들고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짓게 된다. 

 

 

 

"엄마, 여기 봐. 민들레야. 민들레는 정말 어디에나 피나봐. "

 

그리고 모든게 담긴 그의 그림은 공간을 뛰어넘는 공감을 이끌어 낸다. 

 

따뜻한 그림만 그릴줄 알았는데 디스토피아 그림도 꽤 있었다.

 

그리고 이 그림이... 괜히 내게..... 담겼다.

 

보고 있자니... 소름이 끼친다고 해야할까.

 

 

굿즈샵에서 이 노트를 한 권 구입했다. 

마침 아이의 드로잉북이 한장밖에 남지 않기도 했고,

아이가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라따뚜이 굿즈는 변변히 구입할만한게 없기도 해서 차선으로 고른 그림이 이거다.

 

나 개인적으로는 미술관에 다녀올때마다 자극이 되고 갑자기 그리고 싶은게 생겨나곤 하는데

 

이번엔 아이가 더 좋았던것 같다. 

 

내가 그동안 꾸준히 마음써온게 아이가 예술과 편안하게 가까워지는 것이었는데 

 

미술관을 세 번이나 처음부터 다시 봤을 정도로 아이가 일리야 밀스타인 그림을 좋아했다. 

 

아이가 그림 앞에 서서 한참씩 바라보고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뭉클하기도 하고 저렇게 어린 아이가 저 그림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궁금해지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나중에는 다리가 아파서 애거서크리스티의 그림 앞에서는 쪼그리고 앉아서 애거서 크리스티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티레니아해 옆 서재 그림과 거의 똑같이 꾸며둔 커다란 포토존에서는 사진도 찍고 한글로 된 책 제목도 찾아보고

 

어떤 그림의 도트무늬는 몇걸음 뒤로 가야 안보이는지 실험해보고

 

그림이 어떤 상황인지 이야기 나눠보고

 

지금까지 아이와 참 많은 전시를 봤는데 일리야 밀스타인 전시처럼 아이와 그림을 오래 보고 그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건 처음이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를 키우는 주변 지인들에게 이 전시는 아이 손 잡고 꼭 가보라고 강권했다.

 

"우리 애는 그림에 관심이 없어"  "미술관에 가면 20분만에 나와야해. " 

 

우리 아이라고 처음부터 미술관을 좋아했을까. 

 

사실 지금도 싫어한다에 가깝다.

 

내가 어디 가자고 하면 뮤지컬은 좋지만 연주회나 전시회는 싫다고 하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일리야 밀스타인 전시는 정말로 좋았단다. 

 

그리고 나도 정말 좋았다. 작가 개인적으로는 업체의 요구와 자신의 예술성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을지 모르나.

 

그림을 보는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편했다. 

 

그냥 예술로 똘똘 뭉쳐서 이 예술가가 무엇을 나타내는걸까 고민할 필요 없이

 

아! 이건 협동조합!

 

아! 이건 예술가 모임!

 

아! 이건 면도기!

 

아! 청소기!

 

이렇게 단순하게 드러나는 주제가 오히려 난 편안했다. 

 

그리고 정말 심한 맥시멀리즘인 그의 그림에 대해서 작가는 맥시멀리즘이 인간적이라고 했다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삶이 어디 미니멀한가.

 

실제 내 생활, 공간, 삶은 맥시멀 그 자체다.

 

한치의 여유공간도 없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시간도 공간도 여유가 없는 내 입장에서는 일리야 밀스테인의 촘촘히 채워진 그림이.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면 까지도 가까이 가서 보면 작은 점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그 그림이

 

너무나 따뜻했다.

 

공감이고 위로였다.

 

 

 

[이 글은 초대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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