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영문인지 난 모르겠는걸? 누가 비판합디까?"
"신 선생님의 온 분위기 전체가."
영희의 비극은 두 사나이가 다 같이 그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에 있었다. 강 사장과 성표가 영희에 대하여 마음씀이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영희가 구원될 수 없는 일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동정은 결코 애정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예술은 아름답고 진실하고.. 하지만 애정의 경우 진실해도 그것이 추할 경우가 얼마든지 있죠. 아름다운 것이 허위고 추한 것이 진실일 경우...있죠. 그런 경우가...
서로 엇갈리기만 하던 유성이 처음으로 마주친 듯 그들의 포옹은 불을 뿜는 것이었다. 아무런 죄의식도 없었다. 스스러움도 없었다. 핏빛같고 원색만 같은 정염이 있을 뿐이었다.
"고독해서 그러셨어요?"
의화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물었다.
"사랑해서 그랬습니다"
약간의 명성도 있고, 약간의 돈도 있고, 고운 옷도 더러 입고, 사랑도 느끼고...그러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면 될 법한 얘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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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저택의 오세정과 석영희는 한 사람이다.
그리고 강사장과 현박사, 신성표 역시 한 사람이다.
박영태, 노대중, 신정란, 김세형, 나의화.... 많은 사람이 나오지만 이 소설은 어쩐지... 한사람의 남자와 한사람의 여자 이야기처럼 읽힌다.
그들의 애정, 집착, 진정성 없는 관계, 상처받은 각자의 내면의 왜곡된 의식에서 비롯된 이성과 감정의 부조화. 그런 것들에서 다시 상처를 주고 받는 인물들.
나는 김세형을 측은해하고 헌신하면서도 박영태를 좋아하는 정란이다.
나는 나를 좋아하는 현박사와 모의하여 나를 배신한 애인을 독살하고 나를 배신한 남자의 형과 결혼해서 그 남자의 유복자를 키우고 있는 오세정이다.
나는 내게는 동정심뿐이면서 애욕으로 날 안은 성표를 사랑하여 자살을 시도했던 강사장의 세컨드인 석영희다.
나는 노대중을 사랑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자살하여 망우리에 묻힌 소녀의 영혼이다.
나는 성표의 마돈나. 가을에 온 여인, 나의화다.
난 그 모두를 버무려서 뭉쳐놓은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이 모든 인물들은 서로 섞이지도 못하면서 내 안에 도사리고 있다.
공감되어서였을까.
모두가 측은하고 안타까운데... 그들에게 다른 선택을, 좀 더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한 점을 들어 질책할 수가 없다.
그들도 나처럼 약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마지막 인간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연애소설을 읽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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