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정원
봄이 오면 꽃집앞 길가에 내놓은 조그맣고 연두연두한 화분들.
누구라도 그런 화분을 한 번쯤은 사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상하게 내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연두는 누렇게 변해가는 마법까지도.
나도 그렇다.
그렇게 우연히, 간헐적으로 화분을 샀다가 죽으면 버리고를 반복하다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와 함께 화단을 본격적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화단이라는게 말이 쉽지
규모는 계속 커지기만 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가는건 차치하고 시간과 노동력이 어마어마하게 투입되어야 하는 고된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특히 올 봄엔 충해까지 입으면서 깊은 좌절을 맛봐야했다.
나무들을 다 베어버릴까까지도 고려했을 정도다.
그래서 이 책이 지금의 내게 정확히 필요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정원이 우리 삶에 미치는 좋은 영향에 대해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나면 정원가꾸기 슬럼프도 극복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하지만 시작부터 더 큰 좌절이었다.
우리네 정서라는건 원래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집을 짓고 그 자연을 감상하는게 주가 되는 것이고 담장 안 마당은 수수하게꾸미는 거라는데...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사방 어디를 봐도 산자락 하나 보이질 않는 곳이다.
필자도 썼듯이 아파트숲만 무섭게 솟아 있는 그런 곳이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집 주변의 자연을 감상하는건 요원하다.
아름다운 정원 사진으로 가득한 책이다.
요즘은 남의 말도 듣기 힘들고 남이 쓴 글을 읽는 것도 쉽지 않다.
아무래도 시각적인 자극에 익숙해져서 그런 탓인지도 모르겠다.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지금의 난 이런 총천연 사진에 더 크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고 이 책이 그걸 충족시켜주어 좋다는 말이다.
정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모네와 지베르니의 정원 이야기도.
여러 채널을 통해 접했지만 또 새로운 내용을 만날 수 있었다.
언젠가 교육관련 책에서 그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학교에 정원을 가꾸면 학교폭력이 30%이상 줄어든다는 등의 초록 환경이 아이들의 정서에도 도움이 되고 학업성취도에도 영향을 준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것도 그런게 아닐까.
아이 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정원은 꼭 필요한 공간이라는 것.
그리고 나만 힘든게 아니라 이 많은 현자들도 정원 가꾸기의 고단함을 함께 했다는 동질감. ㅎㅎ
뿐만 아니라 나처럼 건성이 아니라 장부로 관리하고 기록까지 한 것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정말 큰 힘을 얻었다.
작가는 실제로 발품을 팔아 이 책을 지어서인지 관람정보까지 세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 이쯤되면 정원 여행 가이드에 특화된 책이라고 봐도 무방할 방대한 자료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책을 보면 볼수록 한국의 정원이 가진 매력에 빠져든다.
책에 소개된 장소들에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도장깨기를 하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