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는 책이야기

동급생 - 프레드 울만

메이메이 2021. 7. 9. 15:11

 

동급생

프레드 울만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2017.2.10.초판 1쇄

2017.3.20. 초판 4쇄

 

프레드 울만

1901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중산층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히틀러가 집권한 후 1933년 독일을 떠나야 했다. 처음에 프랑스로 망명한 그는 그림으로 생계를 꾸리며 화가로서의 경력을 쌓았고 1935년 파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1936년에는 스페인으로 갔으나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여 다시 그곳을 떠나야 했다. 같은 해 9월 영국으로 건너가 정착했고 1985년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프레드 울만은 자신을 예술가로 만들어 주고 평생 [낭만적]으로 살게 한 것은 자신의 고향이라고 강조했다.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의 애정은 [동급생]의 여러 구절에서 빛을 발한다. 영어로 쓰인 [동급생]이 1971년 처음 추간되었을 때의 반응은 미미했으나, 이 소설을 [작은걸작]이라고 평가한 아서 케스틀러의 서문과 함께 1977년 재출간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고 나서 나치가 독일을 장악해 가는 1930년대를 배경으로 유대인 소년과 독일 귀족 소년의 우정을 그린 이 소설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스테디셀러로 사랑을 받고 있다. 1989년에는 제리 샤츠버그 감독, 해럴드 핀터 각본으로 영화화 되었다.

 

 

 

별점 : 3.5점

 

62.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삶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배우는 것이었고 이것은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과연 있기나 한지, 또 이 놀랍고 헤아릴 수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지 알아내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히틀러니 무솔리니니 하는 덧없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정하고도 영원한 의의라는 문제가 있었다.

 

67. 내가 보기에 가능성은 단 두 가지뿐이었다. 하느님이라고는 없든지, 만일 있다면 힘이 있는데 극악무도하거나 힘이 없어서 쓸데없는 하느님이거나, 나는 자비로운 창조주에 대한 모든 믿음을 마지막 하나까지 깡그리 버렸다.

 

 

81. 첫째로 우리는 슈바벤 사람이었고 그 다음은 독일인이었고 그 다음이 유대인이었다. 내가 그 외에 달리 어떻게 느낄 수 있었을까? 우리 아버니나 아버지의 아버니들이 달리 어떻게 느낄 수 있었을까? 우리는 러시아 황제에게서 박해받은 불쌍한 [폴라켄]이 아니었다. 물론, 우리가 [유대인 혈통]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는 것은 우리가 10년 동안 보지 못했던 우리 삼촌 하인리히가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83. 전혀 아니오. 나는 내 독일을 알고 있고. 이건 일시적인 질병, 경제 상황이 나아지기만 하면 바로 사라질 일종의 홍역 같은 거요. 당ㅅ인 정말로 괴테나 실러, 칸트와 베토벤 같은 우리 나라의 위인들이 이따위 쓰레기에 넘어갈 거라고 믿는 거요? 당신은 어떻게 감히 우리 나라를 위해, 우리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1만 2천 유대인들의 기억을 모욕하는 거요?

 

84. 아버지에게는 그 남자가 독일에 대한, 아버지가 제1차 세계 대전 때 두 번이나 부상을 입고도 다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조국에 대한 반역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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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를 처음 본 10대에 2차 세계대전과 독일의 인종청소는 나를 사로잡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이게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라고?

 

그 전에는 이 세상에 악이라고는 북한(우리가 어렸을땐 반공포스터 그리기가 연례행사였으므로. 삐라도 주워가면 노트며 연필도 주던 시절이므로.), 공산당, 소련뿐이라고 믿었던 내게

 

히틀러는 정말 충격적으로 등장했다.

 

그렇다고 역사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공부한 건 아니지만 기회가 될때마다 당시 청소년의 생활상을 다룬 책이라든지 히틀러 최후의 날, 관련 문학작품을 읽곤 했다.

 

동급생은 2차 세계대전 유대인과 독일 백작의 우정을 그려냈다. 작가가 화가여서일까. 정말 그려낸.

 

이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글을 읽고 내 머릿속에서 영화가 찍혔다기보다 한폭의 그림이 그려졌다는 느낌. 

 

프레드 울만이 대단한 예술가여서 이런 아름다운 그림같은 글을 썼다고는 생각들지 않는다.

그 시대 그 장소에서 감수성 예민한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게 아닐까.

 

정말 너무 대놓고 번역체 느낌이 들었는데도 쭉쭉 읽히는걸 보면 정말 잘 쓰인 글이다. 

 

 

 

 

 

읽어볼 책 : 아서 케스틀러-한낮의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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